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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유령일 뿐 – ![]() 유디트 헤르만 지음, 박양규 옮김/민음사 |
이 책을 내가 가지고 간 것이 참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결코 쉬운 책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작가를 알게된 것에 감사한다. 유디트 헤르만이라고 하는 이 (비교적) 젊은 독일작가는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나가는 재능이 있는 것 같다.
7개의 단편 소설을 하나로 모은 책으로 아이슬란드 체코 미국 이탈리아 등 다양한 곳을 여행한다. 단편 소설의 모음으로 소설간에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 주인공 역시 제각각이다(독일 여자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소설을 읽고나서 베를린의 모습이 떠올랐다. 베를린의 흐린 하늘과 아름답지만 어딘가 쓸쓸함이 느껴지는 건물들. 그리고 독일이라는 편견을 벗어버리게 했던 자유스러운 사람들. 소설의 느낌도 비슷했다. 어디서 읽어봄직하고 결론이 그려지는 그런 뻔한 이야기의 나열이 아니었다. 그녀는 친구의 옛남자를 만나기위해 기차를 타고, 미국 횡단을 하다가 유령이 나올것 같은 모텔에서 묵고, 베니스에서 부모님을 만나며,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체코에 간다. 이까지만 들어도 재밌을 거 같지 않은가?
물론 ‘기똥차게’ 재밌거나 책을 한번 펴면 멈출 수 없는 그런 소설은 아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읽는데 삼주는 걸렸다. 쉽게 술술 읽혀지지도 않는다. 미래와 과거가 번갈아 가며 나타나거나, 대화와 독백이 구별이 되지 않는 어떻게 보면 난해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도전의식을 심어주고, 내 언젠간 다시 꼼꼼히 씹어서 읽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책이다.
또한 나도 언젠가 여행을 다니면서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는 이 모든 곳을 다녀왔겠지? 나도 이런 신선함이 살아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그녀에게 문학적 신동이라는 찬사와 여러 상을 안겨준, <여름 별장, 그 후>를 꼭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집에 가자마자 주문을 했다. 시간도 많은데 읽어버리겠다 ㅎㅎㅎ
『단지 유령일 뿐』에 실린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여행’이다. 표제작 「단지 유령일 뿐」에서 주인공 커플은 미국 동부 해안에서 서부 해안으로 횡단을 하다가 텍사스 오스틴에서 일생일대의 경험을 한다. 「차갑고도 푸른」의 주인공은 아이슬란드에서 관광 안내원으로 일하다가 베를린에서 온 친구들과 낭만적인 일주일을 보내고 「아쿠아 알타」의 주인공은 혼자 여행을 하다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부모님을 만나 새로운 감정을 느낀다. 「뚜쟁이」에서 친구 이상 연인 이하인 두 남녀의 미묘한 관계는 체코의 휴양 도시 카를로비바리에서 요동치고 「루스(여자 친구들)」의 주인공은 가장 친한 친구의 옛 연인을 만나러 갔다가 뜻하지 않게 조용한 행복의 순간을 만끽한다.
유디트 헤르만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행은 집중해서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형식이고, 의식이 더 또렷해서 더 긴장된 삶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전환점이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은 뚜렷한 목적 없이 어쩌다 낯선 땅으로 떠나게 되고, 그저 알 수 없는 길을 걷거나 어딘지 모르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표면적으로 연인이나 친구, 가족과 관계를 맺고 있지만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우울해하는 이들은 물리적으로 일상에서 거리를 둔 다음에야 비로소 강렬한 깨달음을 얻는다.
우연, 침묵, 무언의 의미심장함. 답은 대부분 말해지지 않은 것, 쓰이지 않은 행간에 들어 있다. 등장인물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대화는 눈빛과 몸짓으로 대신한다.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몸짓, 침묵, 응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거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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