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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민음사 |
감옥에 두 사람이 있다. 한사람은 좌익 게릴라이자 혁명가. 다른 한 사람은 뼛속부터 여자인 남자. 이 안 어울리는 둘은 같은 감방을 쓰게 되고, 둘이 옹기종기 잘 살다가 결국에는 사랑(!)에 이르게 되어 버린다. 약간은 충격적이고 슬픈 소설. 외국의 분위기는 잘 모르겠지만, 처음 출판하였을 때는 굉장히 센세이셔널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료를 검색해 보니, 모국 아르헨티나에서는 판금을 당해서 스페인에서 출간 하였다고 한다.)
이 마누엘 푸익은 영화와 함께 자란 사나이이다. 쉽게 말하자면 무비 키드(movie kid)라고 할까? 어려서부터 영화를 접하고, 또 영화보는 것을 좋아해서 감독이 되기를 희망한다. 아쉽게 그는 영화 감독이 되진 못한다. 대신 그는 소설을 쓴다. 영화처럼 보이는 소설을 쓴다. 이 책은 실험적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중간에 대화(그러고 보니, 대화로만 이루러 지는 것 역시 영화적이다.)를 마치고 마침표를 세 줄 정도 계속 나열하면서 흐름을 완벽히 끊어준다. 그리고 다음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의 씬(scene)이 바뀌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두 사람의 대화 중에 나레이션이 등장한다. 이런식으로 말이다.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한글은 이탤릭체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중간 중간 흐름이 끊어지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몰리나(gay)가 발렌틴(혁명가)에게 해주는 이야기도 모두 영화이야기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영화스러운 소설이고, 소설 같은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물론 앞의 이야기는 이 책의 표현적인 부분만 언급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용을 잠시 언급하자면, 몰리나는 게이다. 그는 뼛속까지 여자다. 그는 남자에게 사랑 받고 싶어한다. 음 이 문장이 마음에 드는데, 그는 ‘사랑받기를 원하는 남자’이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직까지 남자는 여자를 사랑해 주어야(!)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더 그렇지 않았을까. 그런면에서 보면 몰리나는 여자보다 더 여성스러운 남성이다. (살짝 징그럽게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애틋하게 생각된다.) 근데 몰리나는 또한 ‘이 세상에 여자보다 위대한 사람은 없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남자에게 사랑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율배반적인 이야기다. 실제로 여성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여성들은 그런 이율배반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지만.)
동성애자를 다룬 소설은 처음 읽어 보았던 것이기 때문에, 발렌틴보다 몰리나에게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렇지만 발렌틴의 생각은 마음에 든다. 그는 몰리나의 그런 점들을 지적하면서, 자신을 찾으라고 주장한다. 더 이상 남을 위한 삶을 살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그 역시, 혁명에 얽매인 삶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인간의 감정은 보다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불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는 냉철한 이성이 인간의 최선의 덕목이요, 궁극적으로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은 그런 쓸데없는 것을 제거 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하지만 그도 역시 인간이었다. 그는 감옥에서 고통 받을 때 마다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적인 감정을 배제한 사람’보다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에게 따스하게 대해주는 몰리나에게 몸과 -_- 마음을 연다.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 그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마음속이 남자든 여자든, 감성과 이성 그 어느 것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제발 그것을 좀 인정하자.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자.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리저리 처내기만 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날이선 칼이 되어 날아올 것이다. 나를 알고, 나를 받아들이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 그리고 다른사람을 인정해 주기.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
누가 죽었다는 소식 앞에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여자, 커피 농장이 있는 정글로 돌아가는 자기의 젊은 연인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하는 여자, 파리에서 편집장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여자, 진정한 사랑을 좀처럼 잊지 못하는 여자,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여자, 자기의 결정을 좀처럼 후회하지 않는 여자, 위험한 여자, 모든 것을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여자, 괴로운 추억을 잊을 수 있는 여자.
내가 바라는 그녀.
2006/11/29 10:20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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