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주부터 카프카의 책을 반쯤 읽고 있었다. 이상하게 ‘학술원에의 보고’라는 소설에서부터 더 이상 책이 읽히지가 않는 것이다. 카프카의 소설(음울하고 그로테스크한, 그렇지만 화자는 더없이 차분하게 풀어나가는 이야기)에 재미를 붙여가는 중이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결국 (내 머리와) 합의하에 다른 책을 보기로 했다. 중도에 가서 책을 고르는데, 눈에 들어온 책이 이 책이었다.
우연히도 프란츠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 두 사람은 체코 사람이었다. (근데 한 사람은 독일어로 쓰고, 한 사람은 불어로 책을 썼더라.) 하여튼 두 사람의 소설 모두 우울하다. 작년 겨울에 갔던 프라하가 생각이 난다. 겨울이어서 더 그랬는지 몰라도, 아름답지만 왠지 모르게 무거운 공기가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그런 느낌. 아름다워서 더 슬퍼보이는 도시가 프라하였다. 새벽에 야간열차에서 내리면 한국어로 싸요 싸요를 연발하며 다가오는 호객꾼들(묵을 곳을 소개하는 이들)과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프라하 역과 스산한 날씨가 나에게 더욱 그런 인상을 심어줬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초반에 혁명이니, 이데올로기니 하는 이야기가 나와서 (제일 증오하는 소재들..) 책을 덮으려고 했다. 근데 예상외로 잘 읽혔다.(놀랐다.)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니 사상이니 하는 말들이 나올 때 마다 내가 예전에 느끼던 멀미가 예상보다 매우 적게 일어났다. (더군다나 그것에 대해 생각까지 해보았다!) 그래서 혼자서 뿌듯해 하면서 읽었다. 이 책이 특히 마음에 들었던 점은 루드빅이 말할 때, 나처럼 괄호를 써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는 점이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또한 한 부(部)마다 시점이 바뀌면서 서술해 가는 것도 신선했다. 산뜻한 단편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다행이도)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스토리는 매우 슬프다. 시대상의 반영이랄까? 등장하는 사람들은 서로 어긋나고, 엇갈리고, 충돌한다. 때리고 맞는다. 겁탈당한다. 모두 ‘유린의 역사’를 살고 있는 것이다. 한번의 농담으로 인해 학교와 당에서 퇴출당하고 탄광으로 보내지는 (우리식으로 하자면 아오지 탄광정도 되겠지) 루드빅. 농담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 마치 물과 기름처럼 같이 어울릴 수 없는 것들까지도 다 섞어버리려고 하는, 그래서 물도 기름도 아니게 만들려 하지만 결코 그렇게 될 수는 없는 사회. 바로 그런 때였던 것이다. 루드빅의 고향 모라비아의 <왕들의 기마행렬>라는 민속축제에서 루드빅이 느끼는 혼란스러움이 바로 그런 느낌이었으랴.
그렇다, 나는 최악의 것을, 허식과 겉치레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행사가 시작될 때부터 이 축제를 짓누르고 있는 분위기, 이 서글프고도 가슴 저미는 <초라함>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질 않았다. 그 초라함은 모든 것들에 달라붙어 있는 듯했다. 간이 매점의 볼품없는 물건들, 달리는 자동차들과 시대착오적 축제 사이의 충돌, 아무것도 아닌 것에 괜히 앞발을 쳐들고 뒷걸음을 쳐대는 말들, 귀를 왕왕 울리는 확성기, 이 모든 것에 . 확성기에서는 기계적으로 줄기차게 두 노래가 울려퍼져서, 젊은 기사들이 목이 터져라 열심히 시구를 외쳐대는 것을 (오토바이들의 요란한 소음과 함께) 아무 소용 없게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 354페이지
밀란 쿤데라는 이런 우울함을 소설로 표현한다. 루드빅의 냉소적이면서 재치가 있는 말투는 이런 상황과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그런 음울한 분위기 속에 깊이 빠지지 않기 위해서 내가 본능적으로 책을 띄엄띄엄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1948년 2월, 공산군의 쿠데타는 체코를 바꾸어 놓았다. 이런 시대의 비극(주관적인 판단이지만 꽤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을 2005년의 내가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끼면서, 밀란 쿤데라라는 이 사람에 큰 호감이 가면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체코에 대해서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역시나 나는 자유주의자(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치려고 한다.
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혀질 것이다.
– 399페이지.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어쩔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더 가슴아픈 사실들.
2006/10/09 01:19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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