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로그 digilog
이어령 지음/생각의나무

디지로그(digilog). 디지털(digital)과 아날로그(analog)의 합성어. 이어령. 그 유명한 ‘축소지향의 일본인’의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소설가, 극작가, 국문학자, 일본문화 연구자, 에세이스트, 언론인, 문예지 편집자, 출판인, 초대 문화부 장관, 88올림픽 기획자, 새천년준비위원장, 2002 한일월드컵 기획자, 그리고 이화여대 교수. 네이버에서 디지로그를 쳐보니까 이런 내용들이 나오더라.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은 (비록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고등학교 때 언어영역 모의고사에 많이 나왔던 비문학-_- 지문이었다. 읽어보면 (문제를 풀면서 -_-) 고개를 끄덕거리게 한다.

  이번 책을 통해서 그는 디지로그라는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 책은 그것에 대해서 친절히 설명해 준다. 또한 우리민족이 왜 이 ‘디지로그 시대’에 알맞은 민족인지 차근차근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설명해 준다.

  이 시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시대를 지나서 디지로그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이 디지로그란 말 자체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친다는 말이기에 새로운 시대로 들어서기 보다는 이 두 큰 시대들이 융합되어 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이 책 뒷마당에 ‘디지로그 시대로 가려면 에디슨을 죽여라’고 하는 칼럼이 하나 있다. 우리의 발명왕 에디슨은 축음기를 가장 먼저 발명하였지만, 그것을 단순한 소리를 녹음하는 정도의 용도 이상으로는 생각해 내지 못하였다. 축음기가 음악과 만나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그는 간파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에디슨에게는 축음기가 음악 미디어가 될 수 있다는 지식 정보, 즉 기계기술 이상의 콘텐츠에 관한 문화 마인드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런 생각을 해낸 사람은 후발주자들이었다. 이런 현상은 오늘 날에도 일어난다. 디자인과 기계를 만나게 한 아이팟, 레이저등을 들 수 있겠다. 이 칼럼을 읽고나서 왜 자연계 출신 사람들이 돈을 잘 못 버는지 다시 한번 절감했다 -_-; (물론 나도 그렇지만)

  또 작가는 우리민족의 특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우선 우리민족은 서양 사람들과 달리 수신 지향적인 정보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는 즉, 듣는 사람 쪽에 의미해석의 최종 열쇠가 들려있다고 할 수 있다. 발신자로부터 메시지가 일방적으로 송출되는 것이 아니라 수신자에 의해서 정보가 재처리되고 가공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정보 전달에 있어서 정확함 보다는 적당한 노이즈(noise)를 묻혀서 정보를 전달한다. 이것은 일종의 끈끈함이요, 정(情)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실제로 우리의 인터넷 생활은 단순한 text기반의 인터넷보다는 멀티미디어와 이모티콘과 같은 떡고물을 많이 묻혀서 정보를 전달한다.

  이런 우리의 특성은 곧 ‘개방적, 수평적, 분산적’인 인터넷의 특성에 적합하다. 정보가 인간의 진정한 행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발신-수신의 어느 한족 편향에서 벗어나 그 관계를 조화시키는 정보 마인드가 필요하다. 정(情)과 신(信)의 가치를 지닌 인(仁)의 정보(情報)문화(文化)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한국의 전통적 정보문화관을 현대에 적극적으로 살려가는 것, 즉 발신 지향적인 서구 정보관에 수신 지향적 동양정보관을 접목시키는 작업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았을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정보전달의 의미를 살린다면 서양의 주도로 이루어져온 정보체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런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왜 아침은 이렇게도 아름다운가. 아직 그 빛 속에 어둠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저녁 노을은 왜 이렇게도 아름다운가. 다가오는 어둠 속에 아직 빛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이 엇비슷하게 존재하는 아름다운 세상. 그것이 한국인이 오랫동안 참고 기다렸던 그 공간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만나는 기분 좋은 시간. 한국인의 시간이다.

p.s.  그는 굉장하다. 아는 것도 많다. 공자가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아보인다고 했던가. 책을 읽어보니 이어령은 태산에 올라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책은 첫 본문부터 기를 죽인다.

  한국인은 무엇이든지 먹는다/ 새해가 되면 떡국을 먹는다. 그리고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 같은 동양문화권인데도 중국 사람들은 나이를 ‘첨(添)’한다고 하고 일분사람들은 ‘도루(取)’한다고 하는데 유독 우리만이 먹는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무시무시한 시간의 신이지만 한국에 오면 별 수 없이 떡국과 함께 먹혀버린다. (중략)

  처음부터 중국어, 일본어,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를 한다. 그의 논리 전개 방식은 항상 이런 식이다. 항상 전국적, 전세계적, 또한 전시대적인 소재를 차용한다. 이런 방식은 사람들의 이해를 쉽게 해준다. 또한 이런 풍부한 소재는 사람들이 쉽게 반박할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나도 책을 읽고 나서 이런 느낌이었다. 그의 글을 읽으면 점점 그의 그런 지식에 눌려버려서 책을 비판적으로 볼 수가 없었다. 그의 완벽한 논리전개와 풍부한 지식에 나와 같은 범인(凡人)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약간의 반감이 생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라면 이와는 정 다른 소리(예를 든다면 지금은 아날로그의 시대로 가고 있다던가. 우리는 서구의 방식을 따라서 디지털시대를 추구해야 한다던가)를 하더라도 곧이곧대로 믿어버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또한 솔직하게 말하자면 책을 읽고 나서 큰 감동이 없었다. 훌륭한 학자로서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서 꼬집어 내고는 있지만, 충격적인 내용은 없다. 우리가 정보통신에 대해서 얘기할 때마다 나오는 주제인 ‘점점 차가워지는 인간세상’에  대해서 또 항상 나오는 답변인 ‘정보통신세계에 인간적인 숨결을 불어넣자’라고 하는 내용을 한권에 통해서 풀어쓰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 ‘디지로그 전략’편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 책에서는 우리에게 느낌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2006/09/18 23:57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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